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정교한 전략들: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의 유혹
강압적인 통치자가 민주주의를 침식시킬 때 사용하는 첫 단계는 언제나 '자정 기능'의 마비다. 대개 법원과 언론부터 손보는 이유는 이들이 권력을 감시하는 핵심 축이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지도자는 법원을 장악해 반대 의견을 법적 처벌로 몰아붙이고, 언론을 정권의 확성기로 전락시킨다. 그 결과는 뻔하다. 판결은 권력의 입맛에 따라 내려지고, 언론은 진실이 아닌 선동을 전파하게 된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학자나 시민단체, 또는 기업들까지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혀 탄압을 받는다. 지방자치단체는 기능을 상실하고, 민간 부문도 정부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이런 체제를 마련한 뒤, 권위주의 지도자는 선거도 마음대로 주무른다. 인기 있는 야당 후보를 법적 이유로 출마 불가 상태로 만들거나, 투표권을 제한하거나, 심지어 선거구 자체를 유리하게 조정하기도 한다. 이런 조작을 지적하는 이들은 해고당하거나 고소당한다.
놀랍게도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비민주적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으며, 권력 분립이나 견제는 불필요한 간섭으로 여긴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뜻’을 따르는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보장받아야 할 자유와 평등의 제도이며, 어떤 경우에도 빼앗길 수 없는 권리를 보호하는 시스템이다.
“국민이 누구냐”는 질문과 포퓰리즘의 본질
지도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만이 ‘진짜 국민’이라는 인식은 포퓰리즘의 핵심이다. 독일 정치철학자 얀 베르너 뮐러는 포퓰리즘을 “국민이라는 이름 아래 다름을 배척하는 정치”라고 정의한다. 이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소수 집단, 언론인, 공직자, 혹은 심지어 반대 정당을 지지한 다수의 유권자조차—를 국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이유는, 민주주의가 ‘다양한 의견의 공존’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는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입장을 달리하는 여러 집단이 존재하고, 이들이 동등하게 국민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어떤 집단도 다른 집단을 “비국민”이라 배제할 권리가 없다.
포퓰리즘이 위험한 점은, 마치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상은 이를 왜곡한다는 데 있다.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다른 목소리를 억누르고, 권위를 독점하며, 결국엔 언론·법원·학계 같은 독립적 기관을 잠식하려 한다. 그렇게 ‘국민의 힘’이라는 명분 아래, 정권은 독재로 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되, 국민만이 유일한 권위는 아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적 원칙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 말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유일한 권위의 근원이 ‘다수의 의사’라는 뜻은 아니다. 독립 언론은 다수의 감정과 상반되더라도 사실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하며, 법원은 대중의 분노보다 증거와 절차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대학은 인기 없는 진실이라도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언론인이 영향력 있는 정치인의 부패를 폭로했을 때, 대중의 반응이 우호적이지 않더라도 언론은 그 보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 판사 역시 대중이 원하지 않더라도 법적 기준에 따라 유죄를 선고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는 단순히 ‘다수의 뜻’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에 기초한 공적 질서인 것이다.
- 저자
- 유발 하라리
- 출판
- 김영사
- 출판일
- 2024.10.11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주의를 잠식해가는 전형적인 궤적을 그대로 따랐다. 권력 분산과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체계적으로 무너졌고, 특히 검찰 권력은 정권의 정치적 무기로 전락했다. 비판 세력에 대한 수사는 집요하게 밀어붙이면서 여권 인사에겐 느슨한 잣대를 적용해 이중 기준이 만연했고, 이는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언론 역시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 배제되며, 점차 자율성을 상실해갔다. 시민단체와 학계까지 권력 감시의 대상이 되어 표현의 자유는 위축됐고, 정부는 ‘국민의 힘’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앞세워 자신들만이 정당한 대변자인 양 군림했다. 이는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반대자를 '비국민'으로 몰아세우고 다양한 목소리를 배제하려는 정치적 기만이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결의 지배가 아니라 소수의 권리와 기본적인 자유를 함께 보장하는 체제인데, 당시 한국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검찰이 움직이고, 언론이 침묵하며, 법원이 흔들리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접어들었다. 결국 자정 기능은 하나둘 제거되었고, 사회 전반이 권력에 순응하는 구조로 재편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은 사실상 붕괴됐다. 윤석열 정권의 탄핵은 이러한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국민적 경고였으며, 우리는 다시 권력에 대한 감시의 눈을 뜨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되살릴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극우 전체주의, 침묵의 지배 (넥서스 유발하라리) (1) | 2025.04.15 |
---|---|
전동킥보드 면허 필수. 개인형 이동장치 안전수칙 범칙금 (1) | 2024.10.07 |
12월 사이판 여행 날씨 온도 강수량 옷차림 (1) | 2023.12.04 |
싱가포르 여행지 추천 11월 날씨 온도 옷차림 (1) | 2023.11.11 |
일론 머스크, 유머 쓰는 AI 챗봇 그록 공개 (1) | 2023.11.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