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린이날 노래 동요 가사 작사자 동요듣기

반응형

어린이날 노래 동요 가사 작사자 동요듣기

어린이날 노래 동요 가사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 노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고자 경남 진주에서부터 각 지역에 ‘소년회’가 창설되면서 싹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파 방정환이 아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1921년 시인 김기진, 동화작가 이정호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해 본격적인 소년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아이들을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애기, 애새끼, 어린것, 아이들, 애, 애들, 계집애’ 등으로 불렸다.

방정환을 중심으로 창립된 ‘색동회’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행사를 처음 열었다. 5월 1일을 ‘새싹이 돋아나는 날’로 여긴 것이다.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 행사 표어는 ‘희망을 살리자, 내일을 살리자’였다. 구호는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갑시다’. 이후 1927년 날짜가 5월 첫째 일요일로 바뀐 어린이날은 1945년 해방 이후 5월 5일로 굳어져 각종 행사가 열렸다. 1961년 공포된 ‘아동복지법’에 따라 5월 5일이 ‘어린이날’로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1973년 기념일로 지정되고, 1975년부터 공휴일이 됐다. 2018년부터는 어린이날이 주말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그 다음 비공휴일이 대체휴일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날인 것만은 분명하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20504.22022000891

 

어린이날 노래 동요듣기

https://youtu.be/7F_LnHa4wJ8

 

https://youtu.be/cHOYt7aHMQI

 

‘어린아이’가 주체로서의 ‘어린이’로 제창되기까지 일제 조선에 소파만 있던 건 아니다. <어린이를 노래하다>는 더더욱 낯설 이름 ‘정순철’로 그 시대를 복원한다. 그것이 올해 갖는 의미가 각별하다. 100번째 어린이날이어서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 지난하게 심고 틔운 그 날의 ‘뿌리’가 말라버린 까닭이다.

1901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정순철의 ‘진짜’ 고향은 동학이다. 외할아버지가 2대 교조인 해월 최시형으로, 정순철의 여러 불행과 드문 기회는 천도교와 맞닿는다. 동학혁명(1894년)으로 어머니 최윤이 옥살이 중 옥천군 아전과 늑혼(강제혼인)하게 되거나, 정순철 출생 직후 아버지 정주현이 후처를 들이거나, “역적의 딸”로 최윤이 따로 산골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거나, 그러다 3대 교조 의암 손병희의 도움으로 상경해 가회동서 교단 보조금으로 살며, 천도교계 보성중·고보에서 공부하기까지 그러하다. 그리고 의암이 사위로 맞은 방정환을 한 집에서 만난다. 1917년, 정순철 나이 열여섯, 방정환 열여덟이었다.

방정환 등이 1921년 결성한 천도교소년회가 어린이 운동을 발아시킬 수 있던 이유는 명료하다. 저자의 설명이기도 하거니와, 해월이 교리화한 삼경사상(경천·경인·경물)의 구체적 실천이 어린이 인권운동이었다. 둘째, 소장세력들의 역할이다. 3·1운동 이후 지도부 공백과 청년층의 성장이 겯게 된 결과인데, 동학을 민족종교 천도교로 조직 정비하며 마치 현대사의 여의도순복음교회만큼 빠르게 교세를 확장시킨 의암에 대한 신진의 비판이 이미 없지 않았다. 해월의 큰아들(정순철의 이복형) 소수 최동희가 사치와 부패방조 등을 이유로 교주에게 직접 쇄신을 요구한 1916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적 인물들의 조합이 일제강점기 가장 진보적인 인권·생명운동을 가능케 했다. 천도교 청년지도자와 일본 유학파가 1923년 결합한 색동회. 도요대 철학과의 방정환, 동경음악학교 정순철과 그의 동문 윤극영 등이 조직한 ‘색동회’는 이후 <어린이> 잡지와 강연 등을 통해 대중을 눈 뜨게 하고, 동화와 동요를 기제 삼아 눈 감지 못하게 붙든다. 어린이날은 1~2회에선 일본서 의견만 보탰던 구성원들이 귀국 후 3회부터 본격 주도하며 “30여만의 어린 사람이 참가한” 전국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1937년 일제는 어린이날을 금지시킨다. 해방 이듬해 정순철은 ‘졸업식 노래’를 작곡해 꽃다발과 눈물 없는 졸업을 어렵게 했고, 6·25전쟁 중 납북된다. 끊임없이 슬픈 과거와 꿈꾸던 그러나 오지 않는 미래를 읊조렸을 법하다.평전을 쓴 도종환 국회의원(시인)이 “정순철이란 이름을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듯, 우리에겐 아이·어른 어울려 몇날을 설레하던 어린이날이 있었다.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41691.html

 

‘짝짜꿍’ 동요로 우는 어른 달래주는 ‘어린이날’

시인 도종환이 되살린 동요 운동가 정순철윤극영·홍난파·박태준과 함께 ‘4대 작곡가’천도교 사상으로 방정환과 함께 다진 어린이날

www.hani.co.kr

 

어린이날 노래 동요 가사 작사자 동요듣기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가사로 알려진 '어린이날 노래'가 교과서에서 제외된 것으로 파악됐다.

5일 교육부에 따르면 1948년 발표된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 노래'는 현행 교육과정이 적용된 2018년부터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제외됐다.

이 노래는 해방 이후 1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1954년부터 국정 '음악' 교과서 10쪽에 수록된 이후 한 번도 교과서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교과서에서의 위상도 낮아졌다. 초등학생들이 꼭 한 번은 수업 시간에 부르고 넘어가는 '제재곡'에서 부록 등에 실린 '참고곡'으로 옮겼다.

 

마지막으로 실렸던 직전 '2009 개정 교육과정' 시기에는 초등학교 3~4학년 음악 교과서 5종(동아출판, 교학사, 세광출판사, 천재문화, 해법에듀)에 참고곡으로 실렸다. 동아출판을 빼고는 모두 부록에 담겼다.

현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교사용 지도서에만 어린이날 노래가 실려 있다. 64년만에 빠진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당시 집필진은 이 노래가 워낙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미 초등학교 현장에서도 어린이날 전후 운동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활에 익숙하다고 보고 교과서에 실어 배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20504_0001860263 

 

"날아라 새들아" 어린이날 노래, 교과서에서 빠졌다…왜?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가사로 알려진 '어린이날 노래'가 교과서에서 제외된 것으로 파악됐다

mobile.newsis.com

 

반응형

댓글